🌙 달과 앤더슨

2023. 10. 20.

🌙 달과 앤더슨

vol.189

🌙 달과 앤더슨

웨스 앤더슨 단편 영화 모음

어린 시절, 저는 로알드 달의 동화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여리기만 해 보이는 어린이들이 용기와 지혜, 그리고 조금의 마법을 가지고 위기를 헤쳐나가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매력적이던지요.

하지만 그런 저보다 더한 로알드 달의 극성팬이 있었네요. 웨스 앤더슨 감독이, 단편 소설을 각색한 영화를, 그것도 4편이나 들고 돌아왔거든요. 그럼 하나씩 보실까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눈을 뜨지 않고도 보는 남자

아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더 큰 돈을 벌 궁리만 하던 헨리 슈거는 어느 날 서재에서 묘한 책을 발견합니다. 눈을 감고도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죠.

이걸로 큰 돈을 벌 수 있겠다 생각한 헨리 슈거는 책에 나온 대로 수련을 하고, 눈을 감고도 볼 수 있게 되는데요. 자신의 내면에서 뭔가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됩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좋아하는, 액자식 구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에요. 이야기 속의 이야기까지 계속 들어갔다가 나오는 방식이 매력적이죠. 4부작 중 가장 밝은 이야기로 가볍게 보기 좋아요.

〈쥐잡이 사내〉

사람이 쥐를 잡을까, 쥐가 사람을 잡을까

조용한 마을, 쥐가 들끓자 마을 사람들은 유명한 쥐잡이 사내를 불러옵니다. 자신만만한 사내는, 청산가리를 먹이에 타 동네 쥐들의 소굴인 건초더미에 뿌리죠.

하지만 쥐들은 먹이에 손을 하나도 대지 않고, 사내는 이를 매우 이상하게 여깁니다. 동네 사람들은 '건초더미 안에 뭔가 영양가 높은 게 있었나 보네요.'라고 말하고요.

잔인하거나 그로테스크한 화면 하나 없이도, 상상만으로 소름 끼치게 만드는 이야기예요. 마지막 부분은 원작 소설과 조금 다르게 열린 결말로 끝나는데요. 나머지 이야기는 보는 여러분에게 맡겨집니다. 건초 더미 안에 뭐가 들어 있었던 걸까요?

〈백조〉

피 묻은 날갯짓

마을의 불량한 소년 둘이 왜소한 소년을 잔인하게 괴롭힙니다. 급기야 알을 품고 있는 백조를 총으로 쏴 죽이라고 시키기 까지 하죠. 소년은 애원하지만 이 악당들은 그를 봐줄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백조>를 보고 나서야, 제가 로알드 달의 단편집을 읽었던 것을 기억해 냈어요. 주인공 소년이 기찻길에 누워 있는 장면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하거든요. 이미지가 퍼즐처럼 맞춰지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2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정도니, 다소 충격적일 수 있어요.